[칼럼] 베를린의 교훈. 남북기본합의서가 다시 가야 할 길

사회부 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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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박춘태(교육학 박사)는 대학교 국제교류처장 및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1991년 12월 13일, 서울과 평양은 한반도 평화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제1조),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제2조), 비방과 파괴 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것이다. 이는 이후 역대 정부가 원칙적으로 계승해 온 평화공존 정책의 출발점이자, 화해와 협력을 거쳐 통일을 지향하기 위한 제도적 토대였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 남북기본합의서는 사실상 서랍 속 문서가 되었고 한반도는 다시 깊은 대립과 단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는 같은 출발선에 가까운 약속을 했음에도 독일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


한반도의 남북기본합의서와 자주 비교되는 사례가 1972년 동·서독이 체결한 기본조약(Grundlagenvertrag)이다. 분단국 독일은 이 조약을 바탕으로 상호 인정과 교류를 확대했고, 결국 통일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그 과정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첫째는 정책의 지속성과 국가적 일관성이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서독 총리가 추진한 동방정책(Ostpolitik)은 이후 정권이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으로 교체된 뒤에도 큰 틀에서 유지됐다. 정치적 경쟁은 있었지만, 국가 간 약속은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우리 사회는 남북관계의 기본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정권 교체 때마다 정책의 우선순위와 접근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그 결과 남북 간 신뢰는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고, 합의의 연속성도 약화됐다.


둘째는 사람이 중심이 된 교류의 축적이다.


동·서독 기본조약 이후 주민들은 편지를 주고받고, 전화가 연결됐으며, 가족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방송과 문화가 서로의 일상으로 스며들면서 정치적 합의는 국민의 삶 속에서 현실이 됐다. 정치가 문을 열자 시민들이 그 길을 채운 것이다.


반면 남북관계는 오랫동안 정치와 군사 문제에 크게 영향을 받아 왔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교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정세 변화에 따라 쉽게 중단됐다. 지속적인 인적·문화적 교류가 뿌리내리지 못하면서 상호 신뢰 역시 충분히 자라기 어려웠다.


독일의 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기적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와 교류, 그리고 국가적 일관성이 만들어 낸 결실이었다. 독일의 경험은 평화와 통일이 단기간의 정치적 성과가 아니라 긴 시간 축적되는 사회적 자산임을 보여준다.


35년 전 우리는 이미 평화공존을 위한 원칙과 방향을 남북기본합의서에 담아 놓았다. 부족했던 것은 문서가 아니라 이를 꾸준히 실천하고 이어갈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합의였다.


남북관계가 어느 때보다 경색된 지금일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를 이어가려는 기본 정신을 되새기는 일이다. 독일의 경험이 보여주듯 평화는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작은 교류가 쌓일 때 비로소 현실이 되고, 통일 또한 미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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