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정체성선양사업뉴스] 대구 조선은행 폭탄거사로 의열투쟁의 불꽃을 지핀 장진홍 선생 의거 <한국유통신문.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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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동 대로변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알림 표지 인근 고층 아파트에 가려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구미시민들은 기념관의 존재를 잘 모르는 실정이다.

(전국=한국유통신문) 김도형 기자= 29일 오후 2시 구미시 임은동에 위치한 왕산허위선생기념관에서는 『나라정신 경북 독립운동사 바로 알기』4주차 교육이 열렸다.

이날 '의열투쟁사 속의 장진홍 의거'란 주제로 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의 2시간여에 걸친 진중한 강의가 진행되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인 금년을 맞이해 구미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경북 독립운동사 바로 알기 교육은 흥미진진했다.

오래지 않은 근래의 살아있는 독립운동 역사를 저명한 학자인 김희곤 안동대 교수, 박민영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들로 부터 들으니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이 새록 느껴지며 가슴은 뜨겁고 손에는 불끈불끈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1주차 교육인 김희곤 교수때 부터 시작된 경북 독립운동의 역사는 하나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피끓는 심정으로 독립운동에 생을 바친 분들의 노력과 피와 땀이 서려 있는 내용들이며, 항간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3주차 교육은 독립운동사적지를 현장답사 함으로서 그 독립운동의 숨결을 한층 더 가슴 와닿게했고 독립운동 당시의 목숨을 걸며 나라를 위해 투쟁했던 선현들의 발자취를 한층 더 우러러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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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김영범 교수 구미시 인동 옥계의 역사와 함께 장진홍 선생의 항일투쟁사에 대해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갔다. 장진홍 선생과 관계된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되 더욱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김영범 교수는 강연에서 의열투쟁의 개념에 대해 말한다.

먼저 '의사'란 일제가 행한 원천폭력에 대한 대항폭력으로서 적의 심장부를 과감히 공격하고 마땅히 처단되야 할 표적들을 응징했던 거사를 벌인 이들을 지칭한다.

민족의 반역자, 죽어 마땅한 자들

의열투쟁의 표적이었던 대상들은 독립운동의 방식에 따라 조금씩 표현은 다르지만 그 맥락은 같이한다.

임시정부가 규정한 응징대상이었던 '7가살(반드시 죽여야 할 7가지 대상)'을 살펴보면 동족이라 하더라도 적괴, 매국적 창귀, 친일부호, 무반성 관공리, 불량배, 모반자 등이었으며 의열단의 경우 '7가살'로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대만총독, 매국적, 친일파 거두, 작탐, 반민족적 토호열신 등이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중요기관 등은 '5당파(응당 파괴해야 할 대상)'로 불렸다.

또한 민족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은 6종 암살대상으로 조선총독 및 관공리, 일본천황 및 관공리, 정탐노, 매국적, 반민족적 신사, 부호, 일본인 이주민 등을 규정했다.

일제치하 당시 이들은 죽어 마땅했던 시대의 적들이었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의사들을 일컬어 가공할 흉폭 행위를 일삼는 자들이었다고 표현했지만, 우리 의사들은 피 끓는 분노와 정당한 저항의 의기를 보이며 자기 몸을 던져 목숨을 바친 이들이다.

김 교수는 최근 뉴라이트 소속의 역사학자들이 의열투쟁을 테러리즘의 일환으로 왜곡하고 친일파의 후손들이 아직도 정치, 경제, 문화계 등 사회 각개 각층에 퍼져 자신들의 세력을 공공히 뿌리내렸고 때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행동을 암암리에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강조했다.

앞 전에 김희곤 교수와 박민영 박사도 누누히 강조했던 것처럼 테러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행위지만,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의열투쟁은 특정한 대상만을 목적으로 그리고 민간인의 피해 없이 행한 정당한 행위였음을 김영범 교수 또한 강조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왜곡하는 뉴라이트 소속의 역사학자들의 모임으로 한국현대사학회의 존재도 아울러 알렸다.

이날 강연에서 김 교수는 장진홍 의사가 거사를 일으키기 전의 행적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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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홍 의사 항일투쟁 연대기 대한광복회 가입을 시작으로 장진홍 의사의 항일 의열투쟁사는 시작되었다.

장진홍 의사는 1927년 10월 18일 정오경 대구부 상정의 조선은행 대구지점에서 폭탄을 터뜨리며 용의주도하게 의거를 실행에 옮겼다. 그 후 2년 뒤 1929년 2월 14일 무렵 오사카에 사는 아우 장의환의 안경점에 은신해 있던 장진홍 의사는 피체 되었고 그 이듬해 7월 31일 옥중 자결하셨다.

김 교수는 장진홍 의사의 스승인 장지필로부터 강렬한 조국애와 항일의식을 품게 되었던 내막들과 함께 인동 장씨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화들을 상세히 전했다.

장진홍 의사가 구미시 진평동 출신의 이내성과 함께 대한광복회에 몸담으며 만주 봉천성과 러시아 하바롭스크로 건너가 항일전을 위한 준비를 했던 과정과 1919년 3·1 운동이 발발 후 일제 군경이 진압을 위해 전국 각처에서 저지른 만행들을 낱낱이 조사해, 그해 7월에 인천항에 들어온 미국 군함 승조원 김상철 하사에게 자료를 넘겨 보고문을 영문으로 번역해 각국에 알릴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안타깝지만 김상철 하사가 장진홍 의사의 부탁을 실행에 옮겼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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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홍 의사의 조선보병대 활동 당시 모습 훤칠한 외모에 강단있는 전형적인 투사의 모습이다. 이날 참석한 교육생 중 인동 장씨도 있었고, 한 교육생의 얘기에 따르면 후손이 사진속의 장진홍 의사와 닮았다며 수근 거리기도 했다.
 
1927년 4월 장진홍 의사는 이내성의 소개로 경산시장에서 만나 알게된 일본인 호리키리 시게사부로로 부터 폭탄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영천에 사는 일본인 고바야시 호지로부터 다이너마이트와 뇌관 30개 그리고 도화선 25척을 산 뒤 다량의 폭탄을 제조했다.

그는 제조한 폭탄을 이용해 대구의 경북도청, 경북경찰부, 경찰서, 형무소, 지방법원, 조선은행 지점, 식산은행 지점, 동척 지점 그리고 구미 인동의 친일부호 장길상의 집 등 모두 아홉군데에 폭탄거사를 실행에 옮기려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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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홍 의사가 폭탄거사를 일으킨 일제시대 대구부 지도 일대에 폭탄거사 대상 표적들이 몰려있다.

이중 장길상은 같은 인동 장씨로서 친일부호 장순원의 큰 아들이었으며, 김영범 교수에 따르면 장순원은 왕산 허위선생의 도움으로 관직을 얻었고 항일을 위한 군자금 지원을 약속했으나 이를 어기며 친일 행각을 벌였고, 1917년 11월 왕산 허위선생의 제자인 박상진 선생이 조직한 대한광복회에서 구미 인동에 거주하던 장순원을 찾아가 처단했다고 한다.

거론된 9군데의 폭탄거사 대상인 장길상의 집에 대해 김영범 교수는 거리상 구미에 위치한 장길상의 집은 현실적으로 거사 대상으로 어려웠을 것이므로, 대구에 있는 장순원의 둘째 아들인 장직상의 집에 거사를 하려 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평가하는 장직상은 머리가 비상했고 대인관계에 능수능란했던 자이며 1925년 당시 대구상공회의소 소장을 비로해 일제의 앞잡이인 중추원 참의직 자리를 제의받기도 했다고 한다.

올곧고 강직한 성품의 장진홍 의사는 같은 문중인 인동 장씨중 친일파를 처단함으로서 본보기를 삼으려 했다고 김영범 교수는 말한다.

장진홍 의사가 대구형무소에서 옥중 자결로 순국할 당시 대구형무소의 1300여명의 제소자 전원은 통곡과 단식으로 향년 36세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바친 그의 별세를 애도했다고 한다.

경북인의 의열투쟁은 1920년대 고양기를 거쳐 1930년대의 잠복기 그리고 1940년대의 분출기란 큰 흐름으로 연속성을 이어갔다.

장진홍 의사의 과감한 결단과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준비에 의해 거행된 대구 폭탄의거는 1920년대 후반기 의열투쟁의 큰 불꽃이 되었으며 걍북인들의 정신과 마음 속에 내재된 특별한 저항정신과 진취적인 정의감의 발로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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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홍 의사에게 폭탄제조법을 전수한 호리키리 시게사부로 관련 기사 호대구부 칠성정의 이시야마집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자결했다고 알려진 호리키리는 폭탄전문가이자 국제공산주의자였으며 항일투쟁을 도운 일본인이었다. 김영범 교수는 폭탄제조 도중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열정신이 민족혼 깊숙이 살아남아 이어짐으로서 언제든지 되살아 날 수 있음을 의미하고 경북인들의 위상을 더욱 드높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날 강연이 끝난 뒤 교육생들은 최근 일본 아베총리의 망언과 정책에 대해 국내 역사학자들은 어떠한 대처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김영범 교수에게 얘기하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젊은 세대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사용하는 일본말의 잔재들과 일본 문화의 무분별한 수용이 있는 오늘날,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앎으로서 현재 우리나라의 정신과 혼을 좀 먹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의 반성 없는 행위들에 대해 대처하며 바로 잡을 수 있는 사회적 기강 확립을 위해 온 국민이 노력해야 할 때다.

다음 5주차 교육은 단국대 역사학과 한시준 교수의 '한국독립운동의 세계사적 의의'란 주제로 포괄적인 의미의 독립운동역사에 대한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날 강연이 끝난 뒤 김영범 교수에게 호리키리 시게부로와 같이 항일 투쟁을 도운 일본인 중 독립 운동을 도운 공로로 훈장을 받은 사례가 없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김 교수는 지바현이 고향인 호리키리의 행적에 대한 자료가 없는 관계의 그의 업적에 대한 훈장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 후세 다쓰지란 사람은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후세 다쓰지는 일제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변론하고 독립 운동을 남몰래 지원한 일본인 변호사로서 국무회의에서 공적을 인정 받아 2004년 10월 12일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일본인이지만 호리키리의 행적 또한 인상 깊이 가슴에 남았던 이날 교육이었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독립운동사의 주역들의 얘기가 많이 숨어 있음도 알게 된 날이었다.  
 
나라사랑은 올바른 역사 인식에서 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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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인동 동락공원에 있는 장진홍 선생 동상 인동 장씨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독립운동가
 
 
<한국유통신문 경북지부장 김도형> flower_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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