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라톤이다
마라톤에 입문하기 전에는 흔히 마라톤이란 운동은 심폐력과 지구력 그리고 인내심이 뛰어난 선수들만이 가능한 운동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다. 하지만 2012년 우연한 기회에 대학교 축제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 대회를 일주일 남겨 놓고 매일 5km가량을 혼자서 달리는 연습을 하였다.
마침 따가운 햇살이 내려 쬐는 초여름의 진입 초기라서 그런지 한 번 뛰어 갔다 오면 팔과 다리가 햇빛에 그을린 티가 확연히 드러났다. 그 누구에게도 마라톤에 대한 정보를 들어 본 바가 없었고 또한 주변에 마라톤 대회를 참가해 본 지인들이 한 명 조차도 없었다. 훈련한지 이틀째에는 보다 효과적으로 달리는 기법이 있지 않을까하여 인터넷으로 마라톤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더니 마라톤 동호회며 마라톤 주법에 대한 정보들이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왔다.
마라톤 이론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마라톤이 이렇게 훌륭한 운동이었던가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닿게 되었다.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했다. 오래 달리면 온 몸이 지쳐 상당히 힘들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건 오해였다. 단련되지 않은 신체로 오래 달린다면 당연히 신체에 무리가 오겠지만 서서히 자신의 기량에 맞게끔 마라톤 훈련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달리는 동안에도 체력이 되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살다가 우연한 계기로 좋은 운동을 하게 된 것이 새삼 기쁠 다름이다.
인생살이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껴진다.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접하게 되면 애써 피해가거나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의지를 갖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무리하지 않게 도전해 간다면 아무리 어려워 보였던 일이라도 해결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10년 세월을 두고 목표한 일들은 반드시 성공에 도달 한다'고 10년 전에 한 친구가 내게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별 의미 없이 와 닿았고 설령 그렇게 계획을 세워 일을 해나가는 사람을 본다면 철저 하리 만치 자기 관리가 완벽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게다가 성격 또한 깐깐하고 평범하지는 않은 사람들일 거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에 불과했다는 것을 마라톤을 통해 알아나가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아무리 체력이 우수하고 역량이 우수한 사람이라도 경험해보지 않은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제 시간 내에 완주하기란 힘들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훈련을 해 온 사람이라면 풀코스 완주는 별일이 아니며 더 나아가 울트라 마라톤인 100km이상을 하루 만에 완주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마라톤의 세계다.
불혹이 되기 전까지 나의 생활들은 단기적인 계획과 주변의 처한 상황을 해결해 나가기에만 급급했던 바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인생을 보는 시야가 조금 더 넓어졌고 계획도 보다 장기적으로 세워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마침 이런 시기에 마라톤을 알게 된 것이 나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인생은 곧 마라톤과도 같다.
아버지에 대한 단상
나는 효자라는 말을 듣기 좋아한다. 아직은 한없는 우리 부모님의 사랑에 턱없이 못 미쳐 안타까운 마음이 많지만 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을 할려고 한다. 철이 들어가며 예전에 불효를 했던 안타까운 기억들이 떠올라 가슴 저며 올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과거들을 반성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막바지 무렵에 아버지께서는 갑작스러운 전화를 하셨다. 평소에 오전 일찍 전화를 하시는 적은 별로 없으셨지만 그날은 의외였다. 혹시나 탈이 나셨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받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추를 따러 오라는 것 이였다.
그 얼마 전 추석이 있었고 추석 때는 대추가 아직 덜 여물어 수확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 말씀은 어머니랑 같이 대추 수확하게 되면 어머니께서 힘들 수도 있으니, 도와주러 오라는 것 이였다.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소에는 두 분이서 오손 도손 그다지 힘들지 않게 대추 수확하시곤 하셨는데 갑자기 올라오라는 말씀에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내심 걱정하였다.
올라가보니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대추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역시 내가 없어도 하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는 어머니 모르게 올라오라 하신 것 이였고 지레짐작 미루어 보아 추석 이후에 조금 적적하셔서 한 번 불러 보신 듯 한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여러 가지 야채나 과일하며 음식들은 택배로 쉬이 보내셨지만 아버지께서는 내가 대추 수확하는 것도 도울 겸 집에 쌓여있는 음식들 가져가라고 부르신 거였다고 말씀하셔서 내심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날 수확한 대추를 한 됫박씩 봉지에 나누어 담으시며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아침에 테니스 치러 나가면 모임 사람들에게 한 봉지에 5천 원 씩만 받고 팔아라!"
시중에 가면 대추 값이 비싸서 한 되에 만 원 씩 하니 잘 팔릴 것이라고 하시며 모두 10봉지를 만들어 주셨다. 난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겠다고 말씀드리며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아주 좋아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판 수익금은 손자 경록이 통장에 모두 넣도록 하여라!"라시며 판매 수익금의 용도를 명확히 해주셨다.
이날의 대추 사건은 경제적인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늘 아버지의 진지하신 말씀과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익히 아는 터라 별 탈 없는 건강하신 모습에 부리나케 올라간 나의 마음은 진정이 되었고, 집으로 되돌아 올 때는 가슴 뿌듯하고 기쁘게 내려왔던 추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는 우리 형제남매를 무조건 일찍 일어나게 하여 부지런함을 몸에 배이게 교육시켜주셨고, 어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남매들 교육 뒷바라지를 하기위해 부지런히 많은 일들을 하셨다.
지금도 어머니는 쉬지 않고 활동을 하고 계신다. 명절 때 형제들 내외가 모였을 때도 분주히 우리를 챙겨주시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이시는 어머니는 '탁월한 부지런함'의 대명사라고 난 늘 느낀다. 그 어떤 사람도 우리 어머니보다는 더 부지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남들이 보기에 내가 좀 더 부지런하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어머니의 평소 모습을 따라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더불어 엄격함과 자상함속에 옛날 선비 같으신 아버지의 면모를 좋아하신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을 아버지처럼 만들고 싶으셨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