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학자 장계황 교수의 '안용복과 독도' 강연 "일본에서 밝힌 안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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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KTN) 김도형 기자= 영토학자 장계황 교수는 역사주권을 통해서 자주독립을 꿈꾸고 영토주권을 통해서 완전통일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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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일본은 러일전쟁을 위한 수단으로 독도를 강탈하였으며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켜버렸다. 울릉군수 심홍택은 이 사실을 중앙 정부에 알렸으며 정부 측에서도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주장하였으나, 이미 을사늑약으로 보호국이 되어버린 대한제국은 일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항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결국 독도뿐만 아니라 전 영토를 일본에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장계황 교수는 '위대한 장군'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안용복의 활약에 대해 일본의 막부가 조선땅이라고 공문을 보내주게 만들었으며 독도, 울릉도 앞바다에 일본 어선들이 못오도록 만든 장본인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독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단연코 안용복이며 영토주권을 위해서 많은 활약을 했으나 정작 우리 사회에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안용복은 조선 숙종 때 사람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성호사설(1761)에는 경상 좌수영
동래의 수군인 능로군 출신으로 왜관에 출입하며 일본말을 학습했다.

 

일본의 문헌 '죽도고(1828)'에는 1693년 안용복이 차고 있는 호패에 서울에 사는 오충추의 사노 용복으로 부산 좌천리에 거주했으며 출생과 사망연대는 불분명하다.

 

숙종실록(1728)에 따르면 1696년 독도 근처에서 어업을 하던 일본 어부들에게 "동도는 자산도(독도)이며 우리나라 땅이다."라고 하여 어부들이 일본에 알렸는데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침범에 대해 항의했다.

 

2005년 일본 오키섬에서 발견된 안용복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원록구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에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강원도에 속한 조선의 영도임"을 기록하고 있다. 안용복의 '숙종실록'의 기록은 양국이 모든 인정하는 기록이다.

그 당시 강원도 행정구역에 편입되어 있었다는 점, 이 문서는 시마네현 오키섬 무라카미 가문에 소장하고 있다가 최근에 공개됐다.

 

안용복의 신분은 노비였으나 일본으로 갈 때 노비의 신분을 감추고 장군의 복장과 깃발을 가져가 일본 막부와 대담을 펼쳤다. 조선인의 기백으로 막부와의 담판으로 이겼다.


1693년 일본에 1차 도일했을 당시 일본 어부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출어하는 것을 막아 달라고 일본에 항의했다. 안용복은 일본 막부로부터 이를 금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귀국했다. 그 후에도 일본 어부들이 계속하여 울릉도에 불법적으로 출어하자, 1696년에 제2차로 도일하여 이를 항의하였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였으나 최근에 이 문서는 시마네 현 오키섬 무라카미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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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제2차 도일 때에는 '울응 자산 양도감세장'이란 칭호를 사용하면서 호키주(현 시마네현) 태수에게로 갔다. 안용복 깃발은 '조울양도감세장 신 안동지 기'였다. 안용복의 활약이 역사적 사실이며 근거가 있는 문헌적 사료라는 것이 입증됐다.

 

한편, 장계황 교수는 강연에서 울릉군수 심홍택 보고 또한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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