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희광 선생 50주기 추모식-2020.1.22.-김도형역사문화영상아카이브기록원》
(전국= KTN) 김도형 기자= 22일 오전 11시 경북 구미시 금오산도립공원에서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50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애국지사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구미지회에서 준비한 이번 추모식에 경북 유일의 생존 독립운동가인 배선두 애국지사를 비롯해 이동일 광복회 경북지부장과 노수문 광복회 대구지부장, 독립운동가 유족과 시민들이 참석해 박희광 선생을 추모했다.
박희광 선생은 경북 구미 봉곡동 출생으로 1916년 만주 봉천성 청원현 남성자학교를 졸업 후 1919년 19세때 신흥무관학요에서 6개월간의 특수훈련을 받은 후 의열단 활동을 했다. 1922년 임시정부 조선독립단 통의부 특공대원으로 활약하며 1923년 이등박문(이토히로부미)의 수양녀이자 매국의 요화로 알려진 배정자 암살을 시도했다.
이후 박희광 선생은 1923년 상해임시정부 지령에 따라 일본군 공격작전에 참가했으며, 1924년 6월 1일 고등계첩자이며 조선인회 서기인 민족의 반역자로 알려진 정갑주 부자를 주살했다. 연이어 동년 6월 7일 매국단체 일진회 보민단회장 최정규 집을 습격해 비서 박원실을 암살, 봉천 일본 총영사관 폭탄투척, 군자금 마련을 위해 대사관의 일본요정 금정관에 침입했으나 일본군과 총격전 중 피체되었다.
박희광 선생은 관동성 지방법원에서 1심 사형, 중국뤼순(여순) 고등법원 2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여순형무소에서 20년간 복역 후 출옥하여 김구 선생 경호원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살다가 1970년 1월 22일 일제고문후유증 재발로 인해 서울원호병원에서 입원치료중 별세했다.
정부에서는 박희광선생의 업적을 기려 1958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을 서훈했다.
한편, 구미시에서는 박희광선생 기념사업으로 매년 3.1절과 8.15광복절 오전 9시에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동상 앞에서 추념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8월에는 유가족과 기관단체에서 기념행사와 더불어 국립묘지 참배를 하고 있고, 광복회원과 시민, 학생, 단체에서 박희광선생 동상을 방문한다.
금년 9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대구 달서구 웃는얼굴아트센터에서 '열사 박희광선생 창작오페라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저작권자(c)한국유통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및 사회적 공헌활동 홍보기사 문의: 010-3546-9865, flower_i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