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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일무이한 6선 민선 지자체장 김관용 경북도지사, 20년 지방자치제의 어려움 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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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KRN) 김도형 기자= 김관용 도지사는 지난해 8월 중앙시사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사람도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게 행정의 본령"이라며 지방자치제에 임하는 행정가로서의 명료한 의지를 보였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부활한 이래 대한민국 유일의 현직 6선 지자체장으로서 인생을 살아온 김관용 도지사는 숙련된 행정가답게 '지방행정의 달인','미스터 새마을' 등 다양한 별명으로 불린다.

 

김관용 도지사는 제1회 지방 선거에서는 45.1%의 득표율로 구미시장에 당선됐지만 이후 70% 이상의 득표율로 내리 구미시장과 경북도지사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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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도지사의 별명 중 '들이대'라는 말처럼 지자체를 위한 예산을 따내기 위해서 중앙부처와 정치권을 부지런히 찾아 다녔고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지구촌 곳곳을 누볐다. 

 

그는 최고의 복지가 일자리라는 생각으로 민생을 다뤘고 지역이 늘 먹고살 궁리에 여념이 없었다. 2007년 당시 김관용 도지사와 구미시의 노력으로 구미 아사히글라스 1억 5천만불 추가 투자 유치도 순조롭게 진행됐으며, 이명박 전대통령은 취임 후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첫 외국기업 방문지로 구미 아사히글라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김관용 도지사는 '2007년 투자유치 전국 최우수기관 대통령표창'을 수상하며 투자유치를 가장 잘하는 도지사라는 입지를 굳히게 됐다.

 

하지만 현재 구미시는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대량해고 사태로 인해 어려운 난관에 봉착해 있는 실정이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지자체는 각고의 노력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관용 도지사는 한 시의원 출신 인사와 오고간 얘기 중에서 진정으로 지역의 변화와 혁신을 이루고 싶지만 "지역에 자신을 발목 잡는 사람들이 많아 쉽지가 않다"라며 다선인 민선 자치단체장의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말못할 어려움도 토로했던 적이 있다.

 

도지사 임기를 2년 남겨둔 그는 최고의 민선 지자체장이기도 했지만 이룩했던 큰 업적 만큼이나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오랜세월 누적된 다양한 인간군상들과의 관계로 인해 남은 인생여정 또한 적지 않은 파란을 겪지 않을까 생각들기도 하는 시점이다.

 

6선 민선 지자체장 김관용, 노련한 정치인인가 타고난 행정가인가?

 

4월 19일 김관용 경상북도 도지사는 서울일보 영남지역 기자단이 경북도청 신청사를 대거 방문해 자신을 찾아 준것에 대해 놀람움과 반색을 표했다.


이날 자리를 주선한 김관용 도지사의 고향 후배인 서울일보 신영길 영남총괄본부장은 김관용 도지사가 행정고시로 행정에 입문해 구미, 의성, 영덕, 용산 세무서장을 거쳐 청와대 근무를 끝으로 민선 자치시대를 맞이해 구미시장에 처음 출마했고 "당선 후 구미시장 3선, 경상북도지사 3선을 기록하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민선 6선 자치단체장으로 민선자치에 달관한 인물"이라며 서울일보 기자단에게 소개 인사를 했다.

 

신영길 영남총괄본부장의 소개에 따르면 김관용 도지사는 그동안 재임 중 지역균형발전협의체 회장, 시·도지사협의체 회장을 역임하면서 여론조사전문기관의 시·도지사 평가에서 현재 16개월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정부 개각시 마다 장관, 총리직까지 거론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총애를 받는 인물로 경북도 발전을 이끌어 오고 있는 인물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실제로 김관용 도지사의 어린 시절은 배고픔과 고난의 연속이었고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서 여섯 식구가 끼니를 해결하는 일조차도 힘겨웠다.

 

대구사범대학교를 나와 낮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밤에는 야간대학생으로 힘겹게 공부한 결과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 1989년 구미와 용산 세무서장을 역임한 뒤 1991년 대통령 민정비서실 행정관을 지냈다.

 

이후 1995년 민선 1기 구미시장에 당선 된 이후 도지사를 포함 6선 지자체장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산증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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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도지사의 업적을 살펴보면 UN과 함께 새마을운동 세계화를 통해 지구촌 빈곤 퇴치에 앞장서고 있으며 실크로드 프로젝트, 경제 문화엑스포 등 대한민국  문화융성을 이끌어 가는 등 국제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경북의 위상은 물론이고 국위를 높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신영길 본부장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는 미스타 김관용이 아닌, 미스타 새마을로 통하며 도민들로부터는 "마구 들이된다"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영어로 말하면 "들이된다를 DRD"라는 도지사로 별명으로 불리는 만큼 높은 추진력을 인정 받아, 그동안 수차례 무산됐던 도청 이전도 그 추진력으로 성공했다고 한다.


신영길 영남총괄본부장은 김 도지사가 구미시장 12년, 도지사 8년을 일해오는 동안을 기자로 함께 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김관용 도지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면 "인간적인 생각에서 그 누구와도 소통하고 포용하면서 매사에 합리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며 소통하는 인물임을 힘줘 얘기했다.


신영길 영남총괄본부장은 고향후배로서 김 도지사에 대해 "모쪼록 남은 임기동안 경북의 발전과 도민들을 위해 힘써 주시고 우리 서울일보를 많이 배려해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항상 건강하고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며 서울일보 기자단에게 격려의 박수를 청했다.

 

솔직담백했던 김관용 도지사의 답사


이에 김관용 도지사는 "과찬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 고향 후배고 해서 선배에 대한 예의로서 덕담을 많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라며 바쁜 와중에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시간을 내 찾아와준 서울일보 기자단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관용 도지사는 자신에 대한 소개에 대해 "여러분들이 훤하게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저는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출발했고 대구사범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다 거쳐서, 제가 선출직이기 때문에 한 번 하면 말라고 했는데 여섯 번씩 해서 안떨어지고 계속해가지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라며 오랜 세월 6선 지자체장을 해온 것에 대해 겸손을 보탰다.

 

김 도지사는 행정직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사실 저는 초등학교 교사시절 군수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군수가 대단해 보였다"라는 사실을 회고했고 "경상북도에서 군수는 결국 못하고 시장과 도지사가 됐다"며 많은 정치적인 우여곡절을 거치고 또 질곡을 겪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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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도지사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장에서 젊음을 다 바치고 경상북도를 맡아서 살림을 살고 있는데 도청을 결정할 때 참 많이 애를 먹었습니다"라며 도지사 초선 당시 했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도청 이전을 결정하고 완공하기 까지의 8년의 세월이 걸렸던 사실에 대해 만감이 교차했다.

 

경북도청 신청사를 지을 당시 김 도지사는 "기와로 할 것이냐 무엇을 할 것이냐, 전통문양을 살려서 그런 부분도 참 수많은 마무리를 지은 것 같고, 결말은 기와로 하면서 많은 분들이 오고 가고 하면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많은 지역에 따른 생각을 가졌다"며 지방자치를 하면서 노력했지만서도 부족했던 부분들이 많았음을 얘기한다.

 

민주주의의 꽃 지방자치제도의 모순점에 대한 김관용 도지사의 견해

 

김 도지사는 지방자치제도에 대해 "저는 지방자치 자체가 불행하다고 이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백성으로부터 밑의 강렬한 열망으로 쟁취를 했더라면 이렇지 않았을 텐데, 위에서 부터 내려온 지방자치로 시작되다보니, 그냥 얻어먹다 보니까 조직도 그렇고 법률도 그렇고 제도도 그렇고 아주 어려움이 있습니다"라며 지난 20년 세월 동안 현장에서 직접 겪은 경험담을 허심탄회히 전했다.

 

또한 각 지자체가 겪는 현실에 대해 "시·도지사들마다 고민을 합니다만 자치조직, 재정, 분권 이 세가지가 제대로 구조적으로 법이나 헌법에 반영이 안됐다. 그러다보니까 절름발이, 한쪽으로 기우는 그런 자치를 하다보니까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보면은 아이구 뭐가 잘못됐다, 균형이 깨졌다. 그것은 아니잖느냐 이런 것이 그냥 눈에 들어오실 겁니다"라며 김 도지사는 솔직한 생각을 토해냈다. 

 

김관용 도지사는 언론에 대한 대우를 잘해주기로 소문난 인물이어서 이날 역시 언론의 역할론에 대해 강조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옷을 갈아 입을 때도 됐습니다. 성년이 됐으니까, 겨울옷을 입고 봄을 맞을 수가 없듯이 새로운 우리 역사를 다시 맞이했듯이, 여러분의 몫입니다. 같이 해야됩니다. 저는 처음부터 지방언론 육성법이라든지 언론육성법에 대해서 감히 주장한 사람입니다."

 

한편 김 도지사는 지방 경제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 "시장의 실패를 어떻게 했느냐, 그러면 지방에서 소화가 어려우면 정부에서 해야된다. 왜 정부에서 해야되느냐, 중앙정부는 권한이 있습니다. 강제권이 있으니까 거기에서부터 나서야 됩니다"라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지방자치정부를 리드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밝혔다.

 

되돌릴 수 없는 지방자치제도

 

다소 지방자치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인 김관용 도지사는 중앙정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의미로 "주장을 계속하고 제가 도지사를 안하더라도 또 다른 사람이 또 하고 시·도지사님이 계속 주장하고 이제는 자치절차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라는 뜻을 보이며 민주주의의 요체인 지방자치제도에 대해 다시 멈춰 서서 뒤로 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김 도지사는 부족한 부분이 많은 지방자치제도이지만 부족한 상태로 지자체를 다듬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얘기했고, 중앙정부와의 공동 노력과 언론인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며 가야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임을 상기시켰다. 

 

경북도청 신청사에 담긴 의미

 

김관용 도지사는 "경북은 이제 정신문화의 꽃을 피울려고 노력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신라시대부터 내려 오면서 유교문화, 독립항쟁, 낙동강 방어선, 강한 새마을 근대화 이런 과정을 계속 맥을 이어서 왔다고 보고 혼을 지킬려고 노력하고, 정체성을 지킬려고 한다"며 경북도청 신청사가 그런 맥락에서 기와 지붕과 더불어 회랑도 만들었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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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전통양식보다 빌딩의 형태로 신청사를 짓는게 제일 편했다고 말하는 도지사는 다음 도지사가 경북의 혼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신청사에 만들어 졌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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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 도지사는 새마을 운동을 예로 들며 가난을 극복한 소중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를 다녀온 사실을 얘기하며 일련의 일들이 오랜세월이 지나 그 진정성이 이해됐다는 사실을 언급했고 지금의 신청사 역시 혼이 있는 도청, 혼이 있는 자치를 소망한다는 말로 훗날 신청사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마음 전했다.

 

김 도지사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준 서울일보 영남지역 기자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에이리프럼의 말을 인용했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깊은 관심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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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통신문 경북 본부장 김도형> flower_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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