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박사칼럼] 구미시민! 낮은 곳으로, 시민 속으로 함께 갈 수 있는 일꾼을 뽑자!

선비 0 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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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진 정치인은 없는가?

조선시대 상소제도 소통의 창구, 지금도 목숨을 건 도끼상소 필요!

박근혜 탄핵 발생 이유, 총체적 정치시스템 소통의 부재

노자의 상선약수 정신 필요, 정치인들의 마음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흘러야

우리의 머슴을 우리의 손으로 뽑아야 한다!

 

항상 선거가 다가오거나 뉴스에서 어지러운 정치사건이 등장하면 으레 누구나 정치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인간이 탐하는 욕구 중 가장 강렬한 욕구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는 이러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렬한 욕구임에도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학을 공부하면 반드시 공부하는 것이 플라톤의 “국가론(國家論)”이다. 그 두꺼운 책에서 강조하는 정치사상은 “이상정치”인데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인정치(哲人政治, rule of philosophers)를 플라톤은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철학이 있는 사람이 정치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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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학에서는 정치에 대한 정의를 가장 정확하게 내리고 있는 미국 시카고 대학의 정치학교수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이다. 그는 정치의 정의를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간결하게 정의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이스턴의 이 정의는 세계 현대 정치학의 주류가 된다.

 

우리 시민들은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정치철학을 가진 사람을 간절하게 원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자기 철학 없고, 당리당략과 정략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인만 대다수  보아 왔다. 한국현대사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와 소신과 철학이 없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의 오역의 역사였다고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엄청난 문제가 많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성공한 대통령과 존경받는 정치가가 없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거시적으로 보면 성공한 정치가는 100년 정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하다. 정치가가 높은 곳에 서 있으면서 항상 낮은 곳의 사람들을 응시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목표인 높은 곳에 오르게 되면 달콤한 아부(阿附)에 젖어 들고,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안함에 길들여져 낮은 곳의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듣지 않을려고 한다. 한마디로 열어야 할 귀가 닫히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은 직접 국민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비밀리에 시찰하는 암행(暗行)을 했다. 이러한 암행은 제도적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더 넓은 지역을 암행하기 위해 왕의 특명을 받은 암행어사가 전국을 다니며, 백성의 생활을 살폈다. 이는 지금처럼 교통·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지방 목민관(牧民官)과 백성들의 삶을 살피기 위한 일종의 지금으로 말하자면 소통(疏通)과 커뮤니케이션의 제도적 장치였다.

 

그리고 상소제도(上疏制度)를 통하여 지방과 신하들이 소통의 통로를 항상 열어 두었다. 상소 중에 도끼를 들고 가서 하는 도끼상소인 지부상소(持斧上疏)가 있었다. 상소를 올리는 사람의 “말과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 달라”는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무시무시한 상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러한 도끼상소를 하였던 사람 중 한명도 죽은 사람은 없었다. 목숨 걸고 하는 임금에게 아뢰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오히려 높이 샀다. 이를 볼 때 절대권력을 가진 왕, 역시 백성과 신하들의 소통하기 위한 언로(言路)를 항상 열어 두어야 했다.

 

문약의 나라 조선이 60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동력은 선비들의 말과 뜻을 펼칠 수 있는 언로를 열어 두었기 때문이라고 어느 역사학자는 말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국가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수단은 소통이다.

 

2017년 박근혜대통령 탄핵사건 역시 총체적으로 정치체계와 시스템이 소통이 부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통치자가 귀를 닫고, 듣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쉽사리 붕괴되고 와해된다. 6.13지방선거로 전국이 과열된 선거 분위기가 느껴진다. 모두들 소통! 소통! 한다. 과연 소통을 외치는 후보자들이 국민과 시민의 눈높이와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필자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보편적으로 사람 누구나 높은 곳에 다다르고, 권좌(權座)에 오르면 귀가 막히고, 보지 않을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지도자는 귀와 눈을 항상 열어 놓기 위해 자기 스스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중국 고대 사상가 중 한사람인 노자(老子)는 그의 도덕경(道德經)에서 "상선약수"(上善藥水)를 제시한다.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은데,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뿐 서로 다투지 않는다는 뜻으로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도(道)의 정신과 같다고 말 한다.

 

물은 모든 만물에게 생명력을 주며 순응하는 것을 우리 인간에게 보여준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하루라도 물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죽는다. 그리고 물은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흘러 오히려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며, 물은 정형화된 형체가 없으며, 시시각각 어느 형태로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적으로 노자의 핵심 철학과 사상으로 주장하는 “상선약수” 일 것이다.

 

지금의 곧 있으면 6.13지방건거에서 지방 일꾼을 뽑는 선거가 있다. 출마자들은 저마다 시민과 유권자들을 등에 업고 춤이라도 출 것 같다. 그러나 일단 선거가 끝나고 나면 시민과 유권자들은 우리가 뽑은 일꾼들의 얼굴보기가 힘들어 지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은 일꾼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들을 용서할 수가 있는데 그때는 시민들이 부여한 사명, 즉 “살림살이”를 잘 한다면 용서가 될 것이다. 살림살이도 못하면서 우리가 매번 얼굴을 본다면 그것 역시 못 봐 줄 일이다. 그들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순간 그들은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항상 그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연기처럼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낮은 곳을 찾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렇지가 못한 것이 역사적 경험이며 현실이었다. 정치인들이 연기처럼 위로만 향하다 연기처럼 살아지는 것이 이제까지 반복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정치인이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바라지 말고 국민들의 삶을 파악하기 위한 낮은 곳을 지향한다면 그 정치인은 우리들의 머릿속에 오래 각인될 것이며 존경을 받을 것이다.

 

필자가 사는 구미시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다. 우리가 항상 부르짖는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는 낮은 곳으로, 시민 속으로 함께 갈 수 있는 지방 일꾼 우리의 머슴을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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