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자랑 김원식 독립운동가를 소개합니다.

선비 0 5,238
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9년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였다. 1921년 서로군정서 독판(督辦) 이상룡(李相龍)의 지시로 비밀리에 입국하여 전국 유지들과 연락,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22년 서로군정서를 비롯하여 대한독립단·벽창의용대(碧昌義勇隊)·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평북독판부(平北督辦府)·보합단(普合團)·광한단(光韓團) 등 각 군단 대표들이 모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로 통합하는데 협력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동북면군사연락위원으로 임명되어 북경에 상주하면서 60여 명의 학생들을 난징(南京) 등지로 유학시켰다.
 
1924년 이후 정의부(正義府)에 투신,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1927년에는 민족 단결과 농민들의 생활 개선을 목적으로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의 설립에 앞장섰다. 1928년 삼부통합운동(三府統合運動) 당시 정의부 대표로 활약하였으나, 뜻이 좌절되자 혁신의회(革新議會)를 조직,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상해로 가서 당시 국내에서 전개되고 있던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는 군중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어 곧 상해한인청년동맹을 결성하였다.
 
1930년 길림전만선반제동맹대회(吉林全滿鮮反帝同盟大會)의 집행 위원에 피선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 뒤 동북면군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일군에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뒤 다시 만주로 가서 1933년 한국독립당군(韓國獨立黨軍) 대표로 한국혁명당(韓國革命黨) 대표 윤기섭(尹琦燮) 등과 난징에서 회합하여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을 결성, 활동하였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후손으로는 현재 경상북도 영주시에 영주고등학교 역사 선생으로 정년 퇴임하시고 광복회 경북지역 이사를 맡고 계신 손자 김세균씨와 부인 권명자씨, 구미시에 증손인 김도형, 김차경이 살고 있으며 또한 서울시에는 증손인 김민조, 김성원이 살고 있다. 
 
그리고 안동시 서후면에 김원식 독립운동가의 뿌리인 의성 김씨 '학봉 종택'이 있다.
 
 
 
김원식

참고문헌

  • 『기려수필(騎驢隨筆)』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大韓民國獨立有功人物錄)』(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자료집』 1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4(국사편찬위원회, 1968)
 
<경북한국유통신문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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