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뉴스] 김희곤 교수의 '한국독립운동과 왕산 허위' 강연, 역사 왜곡하는 뉴라이트들 못마땅 <한국유통신문.com>…

선비 0 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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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마지막 주간부터 대다수의 중·고등학교는 중간고사에 들어간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시험기간이 아닌 시기에는 수학과 영어 공부에 매진하며, 시험기간이 되면 평소에는 등한시했던 암기과목들을 오로지 내신성적을 채우기 위해 밤새워 가며 붙잡고 늘어진다.
 
대표적인 과목이 바로 역사 공부다.
 
나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요즘의 아이들 처럼 벼락치기로 역사과목을 공부했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음미해 보지 못한채 학창시절을 제대로 된 역사관 정립 없이 무의미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시험공부용으로만 생각했던 역사 과목의 중요성에 대해 깨닳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우리네 삶은 단 하루만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에 대해 맞서싸운 수많은 선현들의 안타까운 피와 슬픔과 애환으로 점철된 한 많은 역사 위에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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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구미지역에 감쳐진 역사인 선산갑오동학농민운동과 을미의병에 관련해 취재를 하다보니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이 가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되어 역사학자들이 연구해 놓고 발굴해 놓은 사료들을 손가락 하나로 검색해 쉽게 찾아 볼 수도 있지만, 정작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세세한 부분을 찾다보면 감쳐진 우리네 역사가 참 많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역사가는 검증된 자료를 통해 역사적인 사실들을 연구하고 구체화 시켜 학문으로 정립시켜 놓는 사람들이다.
 
재판정에서는 검사가 한 개인의 역사를 꼼꼼히 조사해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내 하나의 스토로로 엮어 가듯이, 사람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이 검사의 경우와 같이 주도면밀한 조사와 검증을 거쳐 역사에 대해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는 임무를 맡고 있다.   
 
문득 역사에 대한 명언에 대해 떠올려 보았고, 잘은 모르지만 유명한 역사학자인 토인비가 했던 말을 검색해 보았다.
 
"역사는 만인과 만인의 투쟁이다."
 
이외에도 끌리는 말이 함께 검색되 올려본다.
 
콜링우드는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있는 과거다"라고 말했고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분들은 역사학자들인데, 역사학자가 아닌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은 "내가 역사를 기록하려 하므로 역사는 내게 친절할 것이다"라며 다소 오만함이 엿보이는 말을 했고, 미국의 전 대통령인 조지 W.부시는 "역사는 움직인다. 그것은 희망으로 나아가거나 비극으로 나아간다."라며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남겼다.
 
29일 구미시 임은동에 위치한 왕산허위선생기념관에서는 을미거의 2주 갑(120년)을 기념하고 왕산허위 선생의 탄신 1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차원에서 '왕산허위선생 고유제와 학술회의'가 열렸고 취재차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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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전통적인 유교제례의식에 따라 고유제를 지낸 뒤, 안동대학교 김희곤 교수의 학술강연이 열렸다.
 
김희곤 교수는 현재 경북독립기념관 관장을 겸임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대해 특히 경북지역의 독립운동에 대해 정통하신 명망있는 분이다.
 
'한국독립운동과 왕산 허위'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왕산허위 선생의 추모행사를 위해 경북내의 연로하신 많은 유림들이 오신 이유로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시청각실은 깐깐한 눈빛의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강연을 듣기 전 처음 생각은 왕산 허위 선생의 업적만을 기리는 내용의 강연일 것이라 지레짐작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강연의 서두에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서 어디까지 흘러갔으며, 독립운동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그 속에서 왕산의 활약과 업적을 평가하려 한다."며 강연의 밑그림을 그려줬다.
 
이날 처음 김 교수의 강연을 듣기 전 얼마전 부터 독립운동의 역사와 관련되어 취재를 하던 중 자료를 찾다보면 꼭 김희곤 교수가 검색대 위에 올랐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역사 연구에 있어서 중심축이 되는 분이란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현장에서 뵈니 역사계 스타의 콘서트를 접하는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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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는 잠이 오는 역사시간이었지만, 취재를 목적으로 강연을 듣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김희곤 교수의 한국독립운동사 이야기기 귀에 속속 들어왔고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독립운동이란 말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는 상황을 전제로 성립되는 말이다. 즉, 식민지 해방운동과도 뜻을 같이한다.
 
식민지 해방운동을 벌인 나라는 우리나라말고도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을 받은 모든 나라에서 일어났다.
 
독립운동은 세계 최악의 조건에서 강한 투쟁성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특징이 있는데, 식민지 지배 상황에 놓여 있었던 나라들의 독립운동 기간을 살펴보면 필리핀 440년, 인도네시아 330년, 베트남 300년, 인도 91년 그리고 우리나라는 1894년부터 1945년까지 51년간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바로 옆에서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도 있는데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기간은 과연 몇년이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짧은 독립운동 기간이었지만 짧고 강한 투쟁을 선보인 대표적인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더 강성이다. 약 800년간 영국의 식민지 지배하에서 살아온 나라다.
 
김 교수 또한 학창 시절에 신사의 나라로 알고 있던 영국의 런던에서 IRA(아일랜드 공화국)에 의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며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고, 아일랜드라는 나라는 테러국가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역사를 공부하며 진실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말과 함께 아일랜드와 우리나라는 독립운동에 있어서 최고였던 나라라며 말을 이어갔다.
 
독립운동은 우리나라만 했는 것이 아니고, 제국주의로 부터 핍박을 받던 민족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들고 일어선 것이 당연했으리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 갑오동학농민전쟁(1894년)을 시작으로 1910년대까지는 의병 전쟁을 비롯해, 안중근 선생의 의거를 시작으로 윤봉길 선생의 의거까지 의열투쟁이 있어왔다.
 
독립운동이 강했던 나라의 특징은 침략국가와 인접해 있는 국가일수록 그리고 문화적 수준의 격차가 적을 수로 저항성이 가장 강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문화적 수준이 낮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일찍 근대화 된 까닭에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시키려는 야욕으로 51년간 지배를 해왔다.
 
김희곤 교수는 강연을 통해 우리나라 51년의 독립운동 역사 중 한 인물이 오랜 기간 큰 비중을 차지한 경우라며 왕산 허위선생에 대한 평가를 했다.
 
하지만 문학에도 장르가 있듯이 독립운동의 역사에 있어서 각 인물들이 담당했던 역할이 있었음을 얘기한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며 의병운동기를 비롯해 계몽기, 의열투쟁기에 걸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정리하며 개인적인 의견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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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투쟁, 요즘은 뉴라이트가 집권하면서 뉴라이트에서는 의열투쟁을 희안하게도 테러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몰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뉴라이트가 집권하면서 의열투쟁을 테러로 몰아가고 있는 현 작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제가 교사들에게 강의할 때 힘주어 이야기 합니다. 아이들에게 의열투쟁과 테러가 어떻게 다른가 확실하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테러란 아무런 관계 없는 누구나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뉴욕의 9.11테러 처럼 미국의 쌍둥이 빌딩에 있던 사람들,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열투쟁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침략 책임자 일본왕, 관동군 사령관, 조선총독, 상해주주둔사령부, 침략기구인 조선총독부나 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김희곤 교수는 일제에 대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반침략전이라고 정의 내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서 의열투쟁은 안중근 선생의 의거부터시작해, 윤봉길 선생의 의거까지 단 한번도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없었다. 오로지 침략기관과 기구에 대한 공격뿐이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이름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19년 4월 11일이다.
 
1919년 4월 11일에 나온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 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과 2조에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의결에 의하여 차를 통치한다라고 기재되 있고, 10조에는 임시정부는 국토회복후 만 1주년 내에 국회를 소집한다라고 되있다.
 
김 교수는 국회라는 단어가 1919년 4월 11일에 나왔음을 알리며 "그래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1919년이다. 그런데 요즘은 8.15 광복절을 없애고 건국절로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인 뉴라이트들이 집권한 뒤 주장하는 건국절은 1948년 8월 15일이며,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을 건국절로 삼자라는 이 말은 북한을 빼고 남쪽만 하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헌법에 명시되있다"라며 현재 뉴라이트들의 역사를 왜곡하는 행태를 안쓰러워했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김희곤 교수의 강연은 근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역사의 큰 줄기를 보여주었다.
 
역사는 "만인과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역사가의 말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역사를 대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에는 독립운동에 몸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고 저마다 최고의 가치를 부여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일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사람들과 일가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강연 중에 심금을 울렸던 이야기는 안동 내앞마을의 경우 독립운동으로 인해 150여명의 사람들이 만주로 이주했고, 독립운동으로 인해 김동삼 선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해 내앞마을의 역사가 사라질 것을 염려한 이유에서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을 이 자리에 짓게 됬다는 사연이다.
 
가슴 뭉클하고 뜨거웠던 삶의 흔적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편한 오늘을 사는 지금 이순간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이날 강연의 말미에 왕산 허위 선생에 대한 독립운동사에서의 업적 또한 흥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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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회복을 염원했던 왕산 허위 선생, 그는 구한말 국권 회복에 투신했던 대표적인 사대부 출신 의병장이며, 전국 의병의 연합부대였던 13도창의대진소의 군사장이자 총대장으로서 서울진공작전을 이끈 주인공이다.
 
이날 김 교수는 한말의병운동의 흐름과 독립운동의 본질에 대해 일목요연한 전개의 강연을 선보였고, 왕산 허위 선생의 역사적인 위상에 대해 ▲위정척사와 계몽운동의 중간점▲국가 주권수호운동 개혁시도▲전국단위 의병전쟁 기획 서울진공, 경기지역 의병▲집아문중차원 항일구국투쟁로 정리했고, 강연의 말미에 "왕산 허위 선생은 독립운동사의 최고급 지도자"라며 허위 선생의 업적을 기렸다.
 
 
덧붙이는 글 |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독립운동사가 많이 존재합니다. 춥고 거친 만주벌판에서 힘없이 쓰러져간 무명의 독립투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미약하나마 위대한 선현들의 뜻을 기리고자 합니다.
 
<한국유통신문 경북지부장 김도형> flower_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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